1인 기업으로 일하다 보면 ‘혼자 일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역할을 맡게 됩니다.
저 역시 제 회사의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이름으로 진행하는 일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회사의 구성원이나 협업 파트너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차례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 프로젝트의 이메일을 확인하는 도중에 다른 회사의 슬랙 메시지가 도착하고, 통화 중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미팅이 끝나면 후속 작업과 일정이 생기고, 기존 프로젝트에서도 확인해야 할 이슈와 업데이트가 계속 발생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다음과 같은 정보가 정신없이 쏟아질 때가 많았습니다.
- 새롭게 처리해야 할 업무
- 기존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이슈
- 나중에 검토할 아이디어
- 상대방에게 회신해야 할 내용
- 미팅에서 결정된 사항
- 일정과 마감일
- 이미 처리했지만 기록해둘 필요가 있는 내용

당연히 이런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발생할 때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정리된 형태로 기록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여러 디지털 메모 도구를 사용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놓치는 일을 줄이기 위해 여러 디지털 메모 도구를 사용해봤습니다.
노션에 프로젝트와 할 일을 정리해보기도 했고, 별도의 메모 앱을 사용하거나 수첩에 직접 적어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두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메모 앱을 열고, 적절한 위치를 찾고, 제목을 정하고, 프로젝트를 선택하고,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업무가 여유로울 때는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메일과 메시지, 전화와 미팅이 연달아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기록 자체가 또 하나의 일이 됐습니다.
“나중에 정리해야지”라고 생각한 내용은 대부분 잊어버렸습니다.
노션은 분명 좋은 도구였지만, 저에게는 정리된 정보를 관리하기에는 적합해도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빠르게 받아내는 도구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AI가 놓친 일을 찾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시도한 방법은 AI를 이용한 업무 브리핑이었습니다.
AI가 이메일, 슬랙, 노션과 캘린더의 정보를 살펴보고, 오늘 해야 할 일이나 제가 놓친 일을 아침마다 정리해서 알려주도록 했습니다.
여러 서비스에 흩어진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유용했습니다. 매일 아침 AI가 중요한 이메일과 일정, 진행 중인 업무를 정리해주면 제가 직접 여러 서비스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됐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면서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AI는 이메일, 슬랙, 노션과 캘린더에 이미 저장된 정보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통화 중에 나온 이야기, 미팅에서 결정된 내용,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 구두로 전달받은 요청처럼 제가 기록하지 않은 정보는 AI도 알 수 없었습니다.
정보와 이슈가 발생하는 순간에 제대로 저장하지 못하면, 다음 날 아무리 정교한 브리핑을 받아도 그 내용은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아침 브리핑은 ‘기록된 정보를 잘 정리해주는 기능’일 뿐, 기록되지 않은 일을 찾아주는 기능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부족했던 것은 더 정교한 브리핑이 아니라, 업무 중 발생하는 정보를 놓치지 않고 받아내는 과정이었습니다.
브리핑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포착이었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판단 부담’이었다
처음에는 더 좋은 업무관리 도구를 찾으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방법을 시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기록을 못 하는 이유가 게으르거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업무 중 새로운 일이 발생하면 우리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 이 내용은 어느 프로젝트에 해당하는가?
- 프로젝트에 기록해야 하는가, 할 일로 만들어야 하는가?
- 노션에 적어야 하는가, 캘린더에 등록해야 하는가?
- 지금 처리해야 하는가, 나중에 확인해야 하는가?
이처럼 기록하는 순간마다 분류와 판단이 필요하면, 바쁜 상황에서는 기록 자체를 미루게 됩니다.
특히 노션은 정리와 관리에는 좋은 도구지만, 순간적으로 발생한 일을 빠르게 포착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업무관리를 다음 세 단계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 포착하기
- 정리하기
- 검토하고 추적하기
핵심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존에는 정보가 발생하는 순간 포착과 정리를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상태에서 AI가 나중에 놓친 일을 찾아주기를 기대했습니다.
새로운 방식에서는 먼저 아무 판단 없이 정보를 포착합니다. 분류와 정리는 나중에 AI에게 맡기고, 아침 브리핑은 그 결과를 다시 확인하는 단계로 사용합니다.
첫 번째 원칙: 발생한 일은 판단하지 않고 한곳에 넣는다
새로운 업무, 아이디어, 요청이나 이슈가 생기면 먼저 하나의 인박스에 기록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프로젝트를 선택하거나 중요도를 정하지 않습니다. 문장을 다듬을 필요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 OO 계약서 수정 요청 확인
- 다음 주 화요일 오후 3시 미팅
- 홈페이지에 고객 사례 추가 아이디어
- 김 대표에게 견적서 회신
- 오늘 거래처와 결제 방식 논의함
이렇게 적힌 내용은 일정일 수도 있고, 할 일이나 프로젝트 업데이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하는 순간에는 구분하지 않습니다.
포착 단계의 목표는 정리가 아니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적용하니 “어디에 적어야 하지?”라는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입구는 여러 개지만 도착지는 하나로 만든다
PC 앞에서 일할 때도 있지만, 이동 중이나 미팅 중에 새로운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항상 같은 방식으로 기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록하는 입구는 여러 개를 허용했습니다.
- 아이폰에서 음성으로 입력하기
- 애플 노트에 직접 한 줄 적기
- 수첩에 기록한 뒤 사진으로 전달하기
- AI와 대화하면서 내용을 추가하기
대신 모든 기록이 최종적으로는 하나의 인박스에 모이도록 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인박스는 애플 노트의 고정된 ‘인박스’ 노트입니다. 아이폰 단축어를 이용해 음성으로 말한 내용을 이 노트에 계속 추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리야, 인박스”라고 말한 뒤 내용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플 노트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구글 Keep, 메신저의 나와의 대화, 이메일이나 다른 메모 앱을 사용해도 됩니다.
입구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개여도 되지만, 도착지는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
정리는 실시간이 아니라 한 번에 한다
이전에는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즉시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프로젝트를 오가며 일하는 환경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실시간 정리를 포기하고, 인박스에 쌓인 내용을 나중에 한꺼번에 정리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정리가 필요할 때 AI에게 이렇게 요청합니다.
인박스 정리하자.
그러면 AI는 인박스의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1. 미래의 약속과 일정
날짜와 시간이 정해진 미팅, 제출일, 방문 일정 등입니다. 이런 항목은 캘린더 등록 대상으로 제안합니다.
2. 오늘 한 일과 업무 기록
이미 처리한 일이나 회의 내용, 업무 흐름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런 내용은 날짜별 데일리 노트에 남깁니다.
3. 업무 항목
아직 처리하지 않은 할 일, 프로젝트 이슈, 아이디어와 진행 상황입니다.
이런 내용은 노션의 프로젝트 또는 작업 데이터베이스에 반영합니다.
AI가 먼저 분류안을 보여주면 저는 이를 확인하고 “다 좋아” 또는 “2번과 3번만 반영해줘”처럼 승인합니다.
제가 직접 모든 항목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분류하고 저는 최종 판단만 하는 구조입니다.
프로젝트와 할 일도 AI가 먼저 구분한다
업무를 정리하다 보면 프로젝트와 할 일을 구분하는 것도 은근히 어렵습니다.
- 프로젝트: 일정 기간 지속되는 큰 업무 단위
- 작업: 프로젝트 안에서 실제로 실행해야 하는 단위
예를 들어 ‘OO DX’가 프로젝트라면 ‘요구사항 정리’, ‘계약서 회신’, ‘다음 미팅 일정 확정’은 각각 작업입니다.
실제로 인박스에 들어오는 내용의 대부분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아니라 기존 프로젝트에 속한 작업이나 업데이트입니다.
따라서 AI가 새로운 프로젝트 생성을 제안하더라도 바로 만들지 않고, 정말 별도의 프로젝트가 필요한지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프로젝트 목록이 불필요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애플 노트와 노션을 함께 사용하는 이유
저는 한 가지 도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 애플 노트: 빠르게 포착하는 인박스
- 노션: 프로젝트와 작업을 관리하는 기록 시스템
- 캘린더: 날짜와 시간이 정해진 일정
- 데일리 노트: 하루 동안 처리한 일의 기록
- AI: 인박스 내용을 분류하고 각 목적지로 옮기는 정리 담당자
노션을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션을 실시간 입력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정리된 정보가 저장되는 시스템 오브 레코드로 사용하게 됐습니다.
포착은 가장 빠른 도구가 담당하고, 구조화된 관리는 노션이 담당하는 방식입니다.
아침에는 브리핑을 받고, 저녁에는 하루를 채운다
초기에 아침 브리핑만 운영했을 때는 효과가 제한적이었습니다.
하루 동안 발생한 정보가 제대로 저장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포착과 정리 과정이 먼저 만들어지자 아침 브리핑의 역할도 달라졌습니다.
업무관리 시스템은 기록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포착하고 정리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가 설계한 하루의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침: 브리핑 받기
캘린더, 이메일, 슬랙, 노션 등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오늘 확인해야 할 일정과 작업을 브리핑받습니다.
이전과 다른 점은 전날 포착한 이슈와 아이디어, 업무 업데이트가 정리된 상태로 함께 반영된다는 것입니다.
낮: 판단 없이 포착하기
새로운 요청, 아이디어, 이슈와 업무 기록을 인박스에 계속 넣습니다.
저녁 또는 필요할 때: 인박스 정리하기
AI와 함께 인박스를 정리해 캘린더, 데일리 노트와 노션에 반영합니다.
아침에는 시스템으로부터 정보를 받고, 저녁에는 하루 동안 발생한 정보를 시스템에 다시 채우는 구조입니다.
다만 매일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는 규칙은 두지 않았습니다. 인박스가 쌓였다고 느껴질 때 정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업무관리 시스템 자체가 또 하나의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수첩도 버리지 않았다
디지털 업무관리 시스템을 만든다고 해서 아날로그 기록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회의 중에는 수첩에 적는 것이 편할 때가 있고, 복잡한 생각은 손으로 써야 잘 정리되기도 합니다.
수첩에 기록한 내용은 나중에 사진을 찍어 AI에게 전달하고 이렇게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인박스에 넣어줘.
AI가 사진 속 내용을 읽어 디지털 인박스에 추가하면, 이후 과정은 동일하게 진행됩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 기록을 AI를 통해 디지털 관리 시스템에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좋은 업무관리 시스템의 조건
이번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업무관리 시스템이 정교하다고 해서 반드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록할 때 생각하지 않아도 돼야 한다
포착하는 순간에는 분류, 우선순위와 저장 위치를 결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
PC, 스마트폰, 음성, 수첩 등 현재 상황에 맞는 입력 방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록은 반드시 한곳에 모여야 한다
입력 방법이 많아도 정보가 여러 장소에 흩어지면 다시 놓치게 됩니다.
정리는 AI에게 맡기고 사람은 승인해야 한다
AI는 프로젝트 분류, 할 일 추출과 일정 판단처럼 반복적인 정리 작업에 적합합니다. 사람은 AI의 제안을 검토하고 중요한 결정만 내리면 됩니다.
포착 도구는 항상 성공해야 한다
멋지고 정교한 구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성입니다. 몇 번이라도 기록이 실패하면 결국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더 열심히 기록하는 대신, 기록하기 쉬운 구조를 만들었다
제가 찾은 해결책은 더 복잡한 프로젝트 관리 도구도, 더 정교한 아침 브리핑도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일이 발생했을 때는 아무 판단 없이 인박스에 넣고, 나중에 AI와 함께 정리하는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사람은 일을 포착하고 최종 결정을 내린다.
AI는 그 사이의 분류와 정리를 담당한다.
여러 회사와 프로젝트를 오가며 일하는 1인 기업이라면, 처음부터 완벽한 노션 시스템이나 AI 자동화부터 만들려고 하기보다 먼저 단 하나의 인박스를 만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AI도 기록되지 않은 정보까지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늘 발생하는 모든 일을 한곳에 한 줄씩 넣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업무관리의 출발점은 잘 정리하거나 잘 브리핑받는 것이 아니라,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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